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조선 시대 집안에 그늘이 드리운다. 애지중지 아끼던 어린 딸이 중병에 걸린 것이다. 백약도 소용없고 명의마저 고개를 젓는 상황. 부모의 속은 그야말로 타들어간다. 이 때 귀신을 부린다는 만신이 절망한 그들의 귀에 속삭인다. 동갑내기 다른 아이를 죽여 그 간을 내어 먹이면 아이가 살 수 있을 거라고. 평소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겼을 터이지만, 지금은 아이의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시기. 부모는 제정신이 아니다. 결국 부모는 내 자식을 살리고자 남의 자식을 죽였고, 그렇게 하여 아이를 살려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살려낸 아이는 더 이상 내 아이가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드라마의 내용이다. 여기서 부모에 의해 간을 먹은 아이는 간을 먹힌 아이에게 몸을 빼앗긴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아이의 혼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취한 병든 아이의 몸에 빙의되어 그 몸을 차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빙의'를 다룬 이야기에 익숙하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영혼은 그 사무치는 원한을 풀지 못해 구천을 떠돌고, 자신의 한을 달래고자 타인의 몸을 점령해 복수를 자행하는 이야기 말이다. 이 때 원혼에 의해 빙의된 인물은 마치 다른 장르의 CD로 바꿔 넣은 플레이어처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새롭게 덧씌운 혼령의 특성이 전면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체의 육체에 다른 생명체의 특성이 끼어드는 현상은 현실에도 있다! '빙의' 현상을 다룬 이야기에 익숙하다고 해도, 빙의가 실제로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어떤 생명체의 육체에 다른 생명체의 특성이 끼어들어 이전에는 전혀 없던 형질이 발현되는 일은 현실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아니, 이제 우리는 이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고 있다.
우리는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체들은 하나의 어미로부터 복사하듯 똑같은 자손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성생식은 번식 자체는 수월하나 유전적 다양성은 떨어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앞서 글( 오늘의 과학 ‘접합’)에서 살펴보았듯, 무성생식으로 번식한다고 하여 이들 종이 모두 유전적으로 단일한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 이외에도 '미생물의 섹스'인 접합을 통해 적극적으로 유전자를 주고받으며 유전적 다양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심지어는 다른 개체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도 유전자를 받아들여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오히려 유전적 다양성과 번식을 분리할 수 없는 유성생식을 주로 이용하는 생명체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유전자 풀을 다양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형질전환, 새로운 터전을 찾은 DNA 미생물인 박테리아들은 접합을 통해 다른 개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유전자를 주고 받을 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DNA 조각들을 받아들여 이들을 마치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마냥 자기 DNA에 끼워 넣어 이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주어진 DNA를 받아들여 생물체의 유전적인 성질이 변하는 것을 형질전환 (Transformation)이라 한다. 형질전환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박테리아들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여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전략인 것이다. 박테리아들의 오랜 비밀이 인간에게 밝혀진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피스와 에이버리, 형질전환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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